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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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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리(鋤齋里)의 유래

1. 개관

  • 와룡산을 중심으로해서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으로 틀이있고 서북으로는 궁산(弓山:산세가 활처럼 생겼다고 하여 궁산이라 함)이 있으며 동남간 골짜기에는 탑(搭)이 있었던 탑~걸이 있다. 그리고 서북으로는 은행진(銀杏津)나루가 있다. 이 지역은 처음 금호강(琴虎江)변에 자리하고 있어 도림(島林)이 라부르다가 성주(星州) 도씨(都氏)인 도흠조(都歆祖)가 입향(入鄕)하면서 세거지(世居地)가 된 후 도촌(都村)으 로 부르게 되었다. 공은 조선 중종(中宗) 10년(1515)에 출생하여 명종 18년(1563)에 세상을 떴다. 그 후 입향조 (入鄕祖)의 손자인 도여유(都旅兪)의 아호(雅號)가 서재공(鋤齋公)으로 그의 아호를 까서 서재(鋤齋)라고 하며 와룡산의 서쪽이 되는 마을이라 하여 서재(西齋)라 부르며 서재1리가 된다. 서재 2리는 대구부 하동면(河東面)의 지역으로서 중종(中宗) 10년(1515) 석촌공(石村公) 이경욱(李景旭)이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와룡산이 마을 뒤로 둘러 있고 마을 서북쪽으로 산을 안고 있는 안마을이라는 뜻에서 안마 또는 내촌(內村)이라 한다. 1914년 군명동 폐합에 따라 내촌동을 병합하여 서재(鋤齋)라 하여 달성군 다사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1일 달성군리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제 1134호에 의거 동(洞)을 리(里)로 고치게 되었다.

2. 내촌(內忖) · 안마

  • 내촌은 서재 2리의 자연부락이다. 내촌(內村) 혹은 '안마'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 성주 도씨가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로 현재의 서재(鋤齎) 1동은 서재(鋤齎)라 부르고 서재(鋤齎) 2동은 내촌(內村)이라 부르고 있다. 내촌(內村)은 와룡산이 마을을 북서쪽으로 안고 있다하여 안마을 혹은 내촌(內村)이라 부르고 있다.

3. 서재 · 도촌

  • 서재는 서재 1리의 자연부락이다. 서재 혹은 '도촌'이라고 한다. 금호강가에 자리하여 도촌리(島村里)라 하였다.
    성주 도씨(都氏)가 세거한 이후 도촌(島村)을 다시 도촌(都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도여유(都汝兪)의 아호(雅號)가 서재공(鋤齋公)으로 무공람(務工郞)이라는 벼슬을 지냈고 볼록이 많다고 평판이 높아져 공의 아호를 따서 마을 이름을 서재(鋤齋)라 하게 되었다.
최근 업데이트 일시 : 2022/09/29 13: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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